과학은 대개 일관된 관념들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종교, 법, 철학과 유사하다. 과학 자신의 기술적 용어를 빌리면, 과학은 정보이다. 과학은 직접적으로 육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과학은 정신에게 말을 건다. 종교와 예술 역시 감정에 호소한다.
그러나 지식의 이런 형태들은 어떤 방법 때문에 서로 다른가? 과학에만 특별히 있는 속성은 무엇인가? 과학을 철학, 기술, 시로부터 구별시키는 경계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과학이 참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고 확실히 알고자 하지 않고도 과학을 열심히 연구할 수 있다. 보통의 과학자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는 경험과 상식으로부터 안다고 말하고, 만약 그가 지식의 원천이라는 문제에 깊이 빠지지 않는다면과학의 본질에 대한 고도의 기술적인 토론은 과학철학자들에게 떠넘기는 데에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과학자들이 과학철학에 대해 무관심하다든지 심지어 경멸하기도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결국 그들은 매우 어렵고 다소 추상적인 고도의 지적인 작업에 종사할 것이며 자기들이 일반 이론으로부터 얻었던 모든 안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비록 일반법칙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할런지 모르지만, 그들은 적어도 젊은 과학자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학생이 졸업을 해서 실험실에 갔을 때, 만일 그가 과학적 이론과 비과학적 이론 간의 구분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다면과학적 발견을 하는데 있어서 무엇을 해야 할런지를 어떻게 알수 있을까?
사실 과학적 탐구란 이론적 내용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실제적 기술이다. 그것은 책에서 배울 수 없고 모방과 경험에 의해서 배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학생이 논문을 제출했을 때 심사위원들은 그의 논의 과정에서 왜 특별한 주장을 했는지, 특별한 측정의 신뢰성에 대해서 혹은 자기 주제 영역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 평가해 보라고 물어볼 수 있다. 심사위원은 논문제출자가 자기와 공통의 언어를 공유하고, 자기 분야의 원칙들을 공유한다고 가정할 것이다. 어떤 과학자도 이론이 관찰에 의해 증명된다는 것을 정말로 의심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과학적 논의는 복잡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정확하지도 않다. 사용되는 용어와 개념은 매우 미묘하고 기술적일지 모르지만 아주 단순한 논리적 형태로 편집된다. 수학에서 사용되는 보다 복잡한 형태의 증명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논증을 하는데 있어서 부수적인, 수학적 실수를 범하는 것보다는 말로 논증을 하는데 있어서의 불합리한 추론을 자주 발견한다. 이것은 과학자의 지적인 능력을 얕보는 것이 아니다. : 이것은 단순히 다음을 의미한다. 즉 과학 논문에서 사용되는 논증이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매우 사려깊은 토론을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공공지식이다. 과학은 단지 공표된 지식 또는 정보가 아니다. 과학적 사실들과 이론들은 비판적 연구에, 그리고 다른 경쟁하는 사람 또는 중립적인 사람들에 의한 시험에 살아남아야만 한다.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짐이 밝혀져야 한다.
과학의 목적은 가능한 가장 넓은 분야에 대한 이성적 견해의 일치(consensus)이다. 이것은 과학이 근거하는 기본 규칙이다. 이것은 `과학적 방법'의 부수적 결과가 아닌 과학적 방법 그 자체이다.
과학적 탐구는 사회적 활동이다. 기술, 예술, 종교는 Robinson Crusoe에게도 가능했을테지만, 법과 과학은 그렇지 않다. 과학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서로 서로를 향해서 행동하는 법을 보아야만 하며, 어떻게 그들이 조직되며, 어떤 식으로 그들간에 정보가 유통되는지를 보아야만 한다.
과학적 지식이 공공의 것이며 Consensible하다는 인식은 과학의 다양한 양상간의 복잡한 내적인 관계를 찾아내게끔 해 준다. 과학의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차원을 구별해서 따로따로 논의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과학을 전체적으로 특징지워 나가야만 한다.
John Michael Ziman(1925 - 2005)의 <What is Science?> 전문